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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기는 잘 안적는데..요새들어 오픈결말이라고 아리송한 결말을 던져주는 영화가 많다보니 곱곱히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 결말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었는데.제가 내린 결론은..살인자의 왜곡된 기억., 자기합리화한 기억인 아닐까 싶어요.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하게 해석하긴 하는데 제가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운동화와 김밥때문입니다.



살인자가 살인을 처음 하던 날, 집에 가니 김밥재료등이 널부러져 있고 하얀 운동화에는 김칫국물이 묻어 있었죠. 거기에 술취한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맞아 온 몸에 피멍이 든 누나와 엄마가 있었습니다. 살인자의 나이 그때 15살.. 15살 소년이 방안에서 그 모습을 보고 아버지를 보니 아버지는 잠에서 막 깨어 보자마자 아들을 때리기 시작합니다. 소년은 맨 몸으로 그 매를 견뎌내죠. 한 손으로 널부러진 운동화를 잡으려고 하며 고통을 이겨내려 합니다. 아버지는 소년을 옆방으로 끌고와 미친듯이 때리고 있었죠..소년의 비명..그리고 잠잠해진 소리들..

소년은 아버지를 목졸라 죽입니다. 아버지가 왜 옆방으로 굳이 끌고 들어가서 때리려 했는지 소년이 아버지의 목을 조를때 옷을 입고 있던 아버지는 왜 웃옷을 벗고 있었는지..살인자가 그러죠. 아버지의 눈은 짐승의 눈빛이었다고 폭력뿐 아니라 다른 학대를 하지 않았나 싶어요. 정말 모든 상황이 딱 죽어도 마땅할 상황이었습니다. 비록 아버지였지만 어떤 면죄부를 주고 싶은 상황이었던거죠. 살인자는 그 이후 우리 가족들은 편안하게 살았다고 했습니다.



살인자는 그때부터 나쁜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이 부인과 자식을 폭행하는 횟집 사장을 죽이고 다른 사람들을 죽입니다. 그 사람들을 죽여 대나무숲에 묻었다고 했습니다. 살인의 정당성. 나는 다른 연쇄살인범과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살인범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 갔을때.,살인자의 죄를 알고 함께 그 죄의 고통에서 괴로워한 누난 이미 살인자가 15세 소년이었을때 목을 매 자살을 했었습니다. 살인자가 하얀 운동화를 들고 집안으로 뛰어들어 왔을때 누나의 죽음을 목격했던걸 살인자가 기억을 합니다.



운동화..자신이 살인자가 되었던 처참했던 아버지의 폭행이 이루어졌던 그 날의 운동화였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누나가 죽었던 그때 본인이 가지고 오죠. 어쩌면 그 날의 아버지 폭행이 만들어낸 살인은 살인자의 변명이 이루어진 꾸며낸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게 진실인지 환상인지 우리도 헷갈리는 상황들이 종종 연출됩니다. 김밥도 허구의 기억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데 아버지가 폭행하던 날도 김밥재료들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습니다.(흠..이건 사실 나의 착각일수도..분명 단무지 김 이런걸 본것 같음), 그리고 수녀인 누나를 찾아갔을때도 혼자서 김밥을 먹는 장면이 나오죠. 본인에게는 누나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성당에 갔을때 허물어져가는 빈 벤취에 먹다남은 김밥을 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김남길.(민태주?)을 감시할때도 차안에서 김밥을 먹습니다. 김밥은 그가 지키고 싶어하는 가족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밥재료가 흐트러진것은 가족의 고통을 ,유일한 피붙이인 누나를 만나러 갈때도 김밥을.. 딸을 지키기 위해 경찰을 감시할때도 김밥을..그의 깊은 곳에서는 가족을 지키고자 사랑하고자 하는 갈망이 있습니다. 비록 그의 살인의 기억들이 왜곡되었다 하더라도 모두가 거짓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김남길은 자신을 낳아주신 친엄마에게 다리미로 맞아 머리가 함몰되었습니다. 자기를 지켜줘야 할 엄마가 아들에게 그런짓을 했기에 여성혐오로 연쇄살인을 하게 되었죠. 반대로 살인자는 자신의 진짜 딸이 아닌 은희를 지켜주기 위해 그와 싸우게 됩니다. 살인자는 이 사실을 알고 은희도 죽이려고 했었죠. 하지만 자신의 깊은 곳에서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자신의 생각을 확 지워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실을 망각속으로 묻어버리고  살아갔던 거죠.어쩌면 살인자의 왜곡된 기억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모두 덥고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거, 과거에 자기가 행했던 살인들이 그래도 정의로웠던 나름대로의 방법이라고 합리화시키면서 살아갔던거죠.


터널을 빠져나와 잊지말아야할 사람의 얼굴을 붙여놓은 목걸이에는 민태주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자살하려던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 그는 또 다른 왜곡과 환상으로 빠져들어가는것인지. 아니면 민태주가 곧 자신이었는지 확인해주지 않고 영화는 끝나가버립니다. 그러나 제가 느낀 것은. 살인자의 기억, 그리고 진실이라고 알고 있던 기억 모두가 진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사실, 진실과 거짓은 이렇게도 왜곡되기 쉽다는 거죠.


 나의 기억이 정말 사실이라고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보면 기억은 항상 자기합리화시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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